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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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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사람 바나바(한국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장,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김영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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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2-07 16:45 조회2,3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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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3.

위로의 사람 바나바

(개원 14주년 감사예배)

 

한국기독교 사회문제연구원장,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김영주 목사

<사도행정 436>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부족한 사람을 개원 14주년 감사예배에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굿뉴스병원과 함께하는 복지관계자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사회의 최고의 꽃은 복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한국사회의 역사를 써 내려가시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복지입니다. 인간이 행복하고 살만한 세상, 어렵고 힘들 때 그 사회가 우리를 뒷받침해 주고 보살펴 준다는 믿음이 있는 나라, 이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 애를 쓰시고 또 New Frontier로서 그 역할을 하시는 여러분들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저는 성서의 한 인물, 바나바를 소개하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초대교회의 큰 역사를 이루고 키워드를 진 사람을 바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서 찬양을 합니다. 바울이 기독교 역사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느냐? 성경도 바울서신이 있고 바울의 흔적 바울의 훌륭한 기록들로 찬양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리스도교는 예수교냐? 바울교냐? 로 할 정도로 바울에 대하여 칭송을 많이 하는데 바울이 초대교회를 세우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저는 초대교회에 가장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은 바나바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심으로 공부를 했는데 바나바는 신약성경의 흔적흔적마다 다 나와 있는데 바울처럼 위대하게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저는 바울이 위대하냐? 바나바가 위대하냐? 라고 제게 질문을 한다면 저는 바나바가 위대하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의 이름은 요셉인데 사도들이 바나바라고 이름을 붙여 불렀습니다. 그 뜻은 위로의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 요셉은 일반 사람들이 흔히 사용한 이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셉은 구브로(키프로스) 섬사람이며 레위족 사람인데 사도들이 별명으로 위로의 아들이라는 바나바라고 불렀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부도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바나바라는 좋은 이름을 얻었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내용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기독교인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온전히 바치지 않았고 정직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나바는 온전한 사람이요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할 것이 2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의 몸을 드리고 있는가? 또 한 가지는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가? 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2가지를 꼭 명심하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온전히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살지를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은총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회개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정직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살지를 못합니다. 그럴 때 내가 사적인 욕심과 욕망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살았습니다. 정직하게 온전하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새롭게 살겠습니다.”라고 날마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고 숨어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라고 했을 때 아담이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음을 자인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도 하나님께서 카인아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카인은 하나님 내가 아벨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자기가 동생을 죽여 놓고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카인이 하나님께서 물었을 때 하나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잠시 질투와 욕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아마 인류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와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그러나 이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내가 그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고백하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택하시지 않으셨다면 내가 그 나사렛에서 태어난 그 예수를 평생 내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셔서 나를 제자로 삼으시고 당신의 아들로 삼아 주셨는데. 나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의 모든 것을 바치며, 하나님 앞에서만이라도 정직하게 살아가야 하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바나바는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에서 바나바를 찾아보면 바나바는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러 가는 중에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변화하여 바울이 됩니다. 그 변한 바울이 당시 예수님의 제자를 만나서 그들과 사귀고 싶고, 믿는 사람들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변화된 것을 사도들 앞에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제까지만해도 믿는 사람을 잡아서 죽이고 박해했던 사울을 의심해서 만나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927절에 보면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나바는 그 사울을 맞아드려 사도들 앞에 데리고 가서 다메섹 도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 말하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지를 말했습니다. 즉 바나바는 사울과 예수의 제자들과의 사이에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자리는 무엇이냐? 한곳에 서서 주장하고 강조하고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 갈등이 있는 사람, 분쟁이 있는 곳에 서서 바나바처럼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제자들이 사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오늘날 바울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바나바와 같이 화해시키는 자가 있었기에 바울을 바울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바나바와 같은 화해를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내가 서야 할 자리는 하나님과 사람, 이웃과 이웃 그리고 심지어 원수를, 사람과 자연, 그 사이의 자리에 서서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서야 할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화해자의 자리에 서는 것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화해자의 자리에 서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복수를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저주를 하고. 악담을 하고 주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은 그런 예기를 듣고 속 시원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메스컴에서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갈등을 부추기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남을 지적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 원수되는 사람의 사이에서 그들을 묶어주는 화해의 자리에 서야하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바나바는 사도행전 1122-23절에서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으로 바나바를 보내는데 바나바가 가서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굳센 믿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했습니다. 11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박해를 피해서 안디옥으로 갔는데 그곳에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그곳으로 가게 됩니다. 24절의 말씀처럼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착하게 사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실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착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착함에는 반드시 따르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따르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역사하시고 성령을 충만하게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첫째로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헌금으로 도움을 준 첫 번째 교회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안디옥교회는 이방인들도 포용한 교회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디옥교회의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 즉 예수쟁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 안디옥 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닙니다. 그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예수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고 막힌 담을 헐고 굽은 길을 곧게 하며 유유상종하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든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안디옥교회를 건사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이 바나바가 사울이라는 젊은이를 안디옥교회 데리고 가서 신앙생활을 가르친 것입니다.

또 바나바는 관용의 사람이 [사도행전1536~40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이 말씀을 보면 바나바와 바울이 심히 다투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차 전도 여행 때 힘이 들어 중도에 포기하고 도망간 마가를 두고 바울은 데리고 가지 말자고 하고 바나바는 데리고 가자고 하면서 다투었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서 전도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마가를 데리고 가지 말자고 하는 마가를 바나바는 데리고 구브로 지금의 키프로스 자기 고향으로 전도를 갑니다. 성경은 바울의 예기만 나오고 바나바의 예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바나바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빌레몬서 124절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제일 먼저 마가를 나의 동역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키프로스에서 마가를 잘 가르치지 않았다면 마가는 바울의 동역자가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가는 바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첫 번째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바울이 옥에 갇힐 때 마가는 함께 갇히는 동역자가 됩니다. 바울의 옥중서신에 나와 함께 갇힌 마가라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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